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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황제 조훈현이 1962년 10월14일 만9세로 입단에 성공했다.
<역사속 오늘> '변방'에 '황제'가
등장하다
1962년 10월14일 한국기원이 주최한 추계입단대회에서 서울 삼선국민학교 4학년생 조훈현군이 프로 1단으로 입단했다.
만 9세7개월. '세계 최연소 입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한국 바둑은 일본과 중국에 밀려 변방 취급을 받을 때였다.
당시
바둑의 메이저리그는 일본. 1962년 여섯살 조치훈, 1963년에는 열살 조훈현이 잇달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군 면제를 받은 조치훈 9단이
일본 바둑을 제패하고 세계 일인자로 군림한 반면, 공군에 입대하느라 귀국한 조훈현 9단은 변방의 왕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1988년에 시작된 응씨배는 조훈현과 한국 바둑에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한·중·일 3국이 모두 참가하는 세계대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 첫 대회에 일본 기사 5명, 중국 4명, 대만 3명이 출전한 반면 한국에는 단 한 장의 시드가 주어졌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조훈현은 어렵게 참가한 이 대회에서 일본 대표 고바야시고이치(小林光一), 대만 대표 린하이펑(林海峰)을 잇달아 격파한 뒤
5전3선승제로 치러진 결승전에서 중국의 기성(基聖) 녜웨이핑(손수변 없는 攝衛平)과 맞붙었다. 중국에서 3판, 싱가포르에서 2판을 여는 등
중국의 텃세까지 작용했지만, 조 9단은 1승2패로 끌려가다 2연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989년 9월5일에 열린
제5국에서 145수 끝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는 낭보가 전해진 다음날인 9월6일, 조 9단은 김포공항에서 마포가도까지 무개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 바둑은 세계대회를 휩쓸며 일본, 중국을 제치고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의 경우 2, 3, 4회 대회를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9단이 돌아가며 우승했다. 조훈현 9단은 1962년 입단 후 치른 2767국에서
1910승 14무 843패를 거두며 바둑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
윗 글은 10월14일자
연합뉴스 chungwon@yna.co.kr가 쓴 <역사속 오늘> '변방' 한국바둑에 '황제'가 등장하다
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