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차 들이받으면 책임은 100:0일까

[법률이야기] 앞차 들이받으면 책임은 100:0일까

[매일경제] 2010년 04월 07일(수) 오전 04:00

뒤따라오던 차가 정상적으로 잘 가고 있는 차를 들이받는 황당한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앞차보다 뒤차의 속도가 더 빠른 상태에서 뒤차 운전자가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의 사고를 전방주시태만으로 인한 사고라 한다. 앞을 잘 살폈다면 앞차와 간격을 유지해 운전하든가 아니면 앞차를 추월해 지나갈 수 있을 것인데 한눈팔거나 딴 생각하다가 앞차를 들이받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잘못은 100% 뒤차 운전자에게 있다.

한편, 앞을 잘 보고 가더라도 앞차와 충분한 간격을 유지하지 않으면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거나 급제동했을 때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을 수 있다. 이같이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도 100% 뒤차의 잘못으로 인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앞차가 정당한 사유 없이 급제동한 경우엔 앞차에도 잘못을 일부 인정해 책임은 ‘앞차:뒤차=20:80’으로 보는 게 보통이다.

불법으로 좌회전하기 위해 갑자기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경우, 달리던 택시가 길가에 서 있는 승객을 보고 갑자기 멈추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신호대기 중 앞차에 가깝게 서 있다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살짝 떼는 바람에 앞차를 들이받은 경우도 안전거리 미확보로 인한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안전거리 확보 의무는 주행 중인 차에만 적용되고 멈춰 있는 차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따라서 안전운전 불이행에 해당되며, 100% 뒤차의 잘못으로 평가된다.

앞서 가던 차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방향지시등을 켠 후 안전하게 차선 변경을 마쳤는데 상당한 거리를 두고 뒤에서 오던 차가 앞차를 들이받은 경우는 어떨까. 이는 뒤차의 전방주시태만 내지 안전거리 미확보에 해당돼 뒤차가 100% 잘못한 것이 된다. 앞차가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고 급히 차선을 변경하는 바람에 뒤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피하지 못하고 부딪히는 경우엔 앞차가 가해차량이 된다.

일반적인 급차선 변경 사고일 때의 과실비율은 급차선 변경한 앞차가 80%, 뒤차가 20% 책임지는 게 이 보통이고, 경우에 따라 70:10이나 90:10으로 가감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급차선 변경 사고일 때 100:0인 경우도 있다. 급차선 변경하는 차가 사이드미러나 룸미러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놓친 채 차선을 변경하다가 바로 옆이나 뒤쪽에서 진행하던 차를 들이받는 경우다. 이때엔 뒤차에 잘못을 묻기 어렵다.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옆이나 바로 앞에서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 온다면 그 차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차선을 급히 변경하는 차의 앞부분으로 옆차로를 진행하는 차의 옆부분이나 뒷부분을 들이받는 것은 정상적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옆이나 뒤에서 몰래 갑자기 딴죽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해차량이 미리 피할 수 없는 사고이니 책임 의무도 없는 것이다.

가장 많은 급차선 변경 사고는 앞차가 여유 없이 차선을 변경하는 바람에 뒤차가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밀려 앞차의 뒤쪽(뒷바퀴 쪽이나 트렁크 모서리 쪽)을 들이받는 경우다. 뒤차 운전자로서는 “갑자기 앞차가 들어왔기에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라고 주장하겠지만, 앞이나 옆쪽을 더 주의 깊게 살피면서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다고 봐 뒤차 운전자에게 20%의 과실이 인정되는 게 기본이다. 이런 점을 기억하고, 몇 초 늦어지더라도 차선 변경하는 차량에 양보해주는 여유 있는 운전습관이 필요하다.

[한문철 스스로닷컴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