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에게 대국에 필요한 정해진 시간을 주고 이를 다 사용하면 ‘초읽기’로 들어가는 방식은 바둑대회의 보편적 시간제도로 자리잡고 있다. 한데, ‘피셔방식’이라는 시간제가 국내 바둑대회에 도입돼 눈길을 끈다.
피셔방식은 세계체스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 사용해 오던 것인데 '남은 시간에 시간을 추가할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이 뼈대다. 시간을 다 쓰면 타임아웃으로 진다. 하지만 한 수 둘 때마다 시간이 추가되기에 시간패는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가령 ‘10분, 추가 30초’를 적용할 경우, 대국시작 후 5초 뒤 착수를 한다면 남은 시간은 '9분55초 30초'가 되는 식이다. 바둑계에서 이를 최초로 사용한 대회는 중국의 ‘도시대항리그’다. 2016~2017 시즌에 서울ORO팀으로 참가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한종진 감독은 “한번은 시간이 10초 밖에 남지 않았는데 빨리 착수하면서 시간을 벌여들여 5분으로 만든 적 있다”고 한다.
피셔방식은 여러 장점이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국자가 전략적으로 시간을 분배하도록 한다. 또 생각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장면에서 지체 없이 착수하게 유도한다. 보는 이도 지루하지 않게 되므로 관전자에게도 좋다. 또한 매수 시간이 추가됨으로 인해 기존의 일반 타임아웃제에서 가능하던 악의적 시간공격을 막을 수 있다.
▲ 제7기 SG배 페어바둑 최강전 예선엔 73개팀이 참가해 16팀이 통과했다. 4월에 진행될 본선은 예선통과팀에 16개 시드팀이 가세하는 32강 토너먼트다.
시드는 다음과 같다. 전기시드(김지석-오유진), 후원사시드(이창호-박지연, 목진석-박태희, 조한승-김혜림, 신민준-최정), 랭킹시드(박정환-위리쥔, 신진서-김채영, 이세돌-이슬아, 최철한-오정아, 안성준-이민진, 강동윤-김은선, 이영구-김미리, 이지현-이유진), 외국인 초청시드(중국1팀, 일본1팀, 대만1팀)까지.
물론 단점도 거론된다. 양패가 생기면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의미없는 수순을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초반 진행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포석단계의 완성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기전 중에서는 14일과 15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7기 SG배 페어바둑 최강전 예선에서 피셔방식이 시도됐다. ‘각자 10분에 추가시간 30초’를 적용했다. 피셔방식으로 대국을 경험해 본 기사들은 “생소하지만 굉장히 합리적이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는 소감을 말했다. 한편 “추가시간 30초는 너무 길다. 조금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평소 시간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바둑방송 해설가 김성룡 9단은 피셔방식을 경험해 본 뒤 “거의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기전에서 도입할 수도 있겠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