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민 절반, 출퇴근·통학 때 자전거 이용…신재생에너지 중심 정책
(코펜하겐=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지난 4월 22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중앙역 인근 사거리.
고색창연한 건물 옆으로 난 도로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멈춰 서 있던 한 무리의 자전거 이용자들이 힘차게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길가 쪽으로 난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수십 대의 자전거가 바쁜 출근길을 재촉했다.
도로의 절반은 자동차, 나머지 반은 자전거 차지였다. 한국에서 흔히 보는 출근시간의 끔찍한 교통정체는 코펜하겐에선 정말 먼 나라 얘기였다.
2014년 유럽의 환경수도(Green Capital)로 선정된 코펜하겐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그야말로 천국 같은 도시다.
코펜하겐의 면적(88㎢)은 서울시(605㎢)의 7분의 1가량이지만 도시 내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의 길이는 400㎞가 넘는다.
자전거 도로의 폭도 2m 안팎으로 넓은 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쓰레기를 버리기 쉽도록 쓰레기통을 비스듬하게 설치하거나 자전거가 멈췄을 때 편하게 쉬도록 발 받침대를 놓아두는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띄었다.
사거리 등 사고가 나기 쉬운 곳에는 자전거 도로를 파란색으로 칠해 식별이 쉽도록 했다.
![]() |
이용자 중심의 인프라 덕분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도 그만큼 많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코펜하겐시와 외곽 시민이 출퇴근이나 통학할 때 이용하는 수단으로 자전거(36%)가 수위에 올랐다. 대중교통(28%), 자동차(29%), 도보(7%)가 뒤를 이었다.
코펜하겐시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틴 슈트레인지 젠슨 씨는 "코펜하겐 시민만 따지면 인구(120만) 가운데 출퇴근이나 통학 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50%나 된다"며 "2025년까지 코펜하겐시와 외곽 시민의 이용률을 50%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코펜하겐이 '자전거 천국'으로 거듭난 것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부·지자체의 아낌없는 지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젠슨 씨는 "1960년대 유럽에 차량 구입의 붐이 있었지만 코펜하겐 시민들은 자전거를 많이 탔다"며 "시에서도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해 전용도로를 계속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전거 우대 정책은 코펜하겐 시내뿐 아니라 외곽 지역까지 퍼지고 있다.
코펜하겐시는 인근 18개 지자체와 함께 자전거 전용 슈퍼 하이웨이(super highway) 건설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외곽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주민들이 자전거를 보다 많이 이용하도록 기반 시설을 준비 중이다.
앨버스룬(Albertslund)과 파룬(farum)까지 각각 17㎞, 20㎞의 전용도로는 이미 완공됐다.
젠슨 씨는 "시내에서 자전거의 평균 속도가 15.8㎞인데 슈퍼 하이웨이에서는 20㎞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기본 인프라를 잘 갖춰 시민들이 자전거를 빠르면서도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참여와 정부의 지원이 어우러진 사례는 덴마크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
어딜 가든 빽빽한 자전거 (코펜하겐=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2014년 유럽의 녹색수도(Green Capital)로 선정된 코펜하겐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그야말로 천국 같은 도시다. 코펜하겐의 면적(88㎢)은 서울시(605㎢)의 7분의 1가량이지만 도시 내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는 400㎞가 넘는다. 코펜하겐 어디를 가든지 빽빽하게 세워진 자전거들을 볼 수 있다. 2013.6.4 kong79@yna.co.kr |
덴마크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1972년 석유 파동에 따른 에너지 위기였다.
니콜라이 싸가니스 덴마크 에너지청 정책관은 "기름 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그전까지는 없던 에너지 정책을 세우기 시작했다"며 "기름보다 싼 석탄을 사용하는 동시에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당시 덴마크에서 대체 에너지로 원자력이 거론됐지만 원전의 위험성을 앞세운 국민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싸가니스 정책관은 설명했다.
1980년대 기후변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석탄 사용량도 점점 줄이기 시작했다. 덴마크는 현재 에너지 생산의 25%를 차지하는 화석연료를 2035년부터는 전혀 쓰지 않기로 목표를 정했다.
2050년부터는 석유나 가스 사용량도 '0'으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에너지 생산 전부를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야심 찬 방안인 것이다.
에너지 정책이 신재생 에너지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20% 가까이 줄었다.
덴마크는 환경문제 개선뿐 아니라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는 기분 좋은 변화도 맛봤다.
싸가니스 정책관은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이후 국민들 마음속에 '자원이 무한한 것이 아니니까 아껴써야겠다'는 의식이 자리잡았다"며 "국민들의 의식과 신재생 에너지 정책이 함께 나가면서 성과를 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kong79@yna.co.kr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