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팀워크로 테니스 세계정상 일군 '중학생 3총사'

형광등이 2011. 8. 12. 08:19

팀워크로 테니스 세계정상 일군 '중학생 3총사'

[노컷뉴스] 2011년 08월 12일(금) 오전 06:00
[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훈훈한 10대들이 또 해냈다. 백인준(안동중) 감독이 이끄는 한국 주니어 남자 테니스 대표팀은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로스요프에서 열린 14세 이하(U-14) 월드주니어대회 결승에서 일본을 2-1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이 국제테니스연맹(ITF)이 주관하는 연령대별 테니스 국가대항전(U-14, U-16, U-18)에서 우승한 건 처음이다. 아시아 국가 중 U-14 월드주니어 정상에 오른 것도 이번이 최초다. 강구건(14, 안동중 3학년), 홍성찬(14, 횡성 우천중 2학년), 이덕희(13, 제천동중) 등 10대 소년 3명이 합심해 일군 성과다. 한국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쓴 '테니스 소년'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또 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뭘까.

◈"마인드 컨트롤 하는 법 배웠어요"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루마니아와의 준결승전. 유럽예선 1위 루마니아는 유럽 주니어 단식 랭킹 1위 보그단 보르자를 보유한 팀으로, 우승후보 0순위였다. 우리나라는 홍성찬이 1단식을 내줬다. 2단식에 나선 강구건의 상대는 보르자. 여기서 무너진다면 결승 진출이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구건은 접전 끝에 보르자를 제압했다. 승부는 원점. 그리고 복식에 나선 홍성찬-강구건 조가 승리하며 2-1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최대 고비는 '숙적' 일본과의 결승전. 일본과는 지난 5월 월드주니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 한 차례 격돌해 2-1로 승리한 적 있다. 3개월 만의 재대결. 그러나 이번에는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실력이 엇비슷한데다 일본이 '두 번 질 수 없다'는 독한 마음으로 나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역시 힘든 승부였다. 홍성찬이 1단식에서 타카하시 유스케에 2-0(6-1 6-4)으로 이겼지만 2단식에 나선 강구건이 야마사키 줌페이에 2-1(6-1 5-7 3-6)로 역전패한 것. 그러나 마지막 복식에서 홍성찬-강구건 조는 타가하시-야마사키 조를 2-1(6-3 7-9 6-4)로 꺾어 한국에 첫 우승컵을 안겼다.

결승전 중 가장 큰 위기는 복식에서였다. 복식 1세트를 따낸 우리나라는 2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7-9로 내줬다. 어린 선수들인만큼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2세트 역전패에 대한 아쉬움을 머릿 속에서 지우지 못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3세트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백인준 감독과 선수들은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해냈다.

백 감독은 애국심을 자극하는 방법을 썼다. "'너희 가슴에는 태극기가 날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라고 말해줬죠. 이기고 있어도 '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어요." 선수들은 "1세트밖에 안 남았으니까 집중하자"며 눈빛을 교환했다. '지나간 플레이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의미였다. 이런 마음은 서로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3세트를 6-4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본인의 장단점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고, 마인드 컨트롤 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건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소득이다.

"결승전에서 1단식에 나갔잖아요. 기선제압을 해야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으니까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서 부담이 많이 됐어요. 다행히 이겨서 부담감은 덜었지만 우승이 확정될 때까지 계속 긴장했어요."(홍성찬) 긴장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게 홍성찬으로서는 과제인 셈이다.

"결승전 2단식 때였어요. 1세트를 딴 후 2세트에서 5-1로 앞서다가 7-5로 역전당했죠. 경기가 거의 끝났다 싶으니까 카메라 기자 분들이 코트 주변으로 모여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겼다'는 마음이 생겨서 방심했나 봐요. 위기상황에서 마음이 조급해져서 제 플레이를 못하는 건 보완해야 돼요."(강구건)
◈팀워크의 소중함…"16세 이하 대회도 같이 나가자"
선수들 모두 "4강 안에 들거라 예상은 했지만 우승은 기대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로라 하는 주니어 테니스강국 16개국이 총출동 했기 때문이다. 우승까지 위기도 많았지만 선수들은 서로 끌고 밀어주며 함께 우승을 일궜다. 자신감을 얻은 건 물론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아 더 뜻깊다.

'맏형'인 강구건은 우승 소감을 묻자 "동생들이 잘해줘서, 셋이 마음을 합쳐서 우승할 수 있었어요"라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본인이 일본과의 결승전 2단식을 내준 게 못내 잊혀지지 않는 듯 "미안하고 고마워"라며 쑥스러워했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 단체전에서 우승까지 해 뿌듯했다"는 홍성찬은 "단체전에서는 서로 믿고 협동심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어 "개인전에서 메달 따면 혼자 좋아하지만 단체전 우승은 다 같이 기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 계속 잘해서 U-16 주니어 데이비스컵에도 같이 나가자"라며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청각장애(3급)가 있는 '막내' 이덕희를 대신해 인터뷰에 응한 어머니 박미자 씨는 "이번에 우승한 데는 형들 공로가 크죠. 덕희는 형들 잘 만난 거에요"라며 웃었다.

7시간 30분간의 혈투를 마친 후 선수들은 "수고했어" "잘했어" 짧지만 굵은 한 마디를 주고받았다. 함께 하는 즐거움을 몸소 느낀 것. 이번 대회 후 어린 선수들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 세계를 향해 간다…"그랜드슬램 달성하고파"
아직 어리지만 선수들의 시선은 세계를 향해 있다. "스윙이 완벽하고 성품이 겸손해 로저 페더러를 존경한다"는 강구건은 "일단 올해 세계 주니어대회 개인단식에서 정상에 서는 게 목표"라며 "훗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자 테니스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 선수는 6명(돈 버지, 프레드 페리, 로이 에머슨, 로드 라버, 안드레 아가시, 로저 페더러, 라파엘 라달)이 전부다.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볼 치는 게 재미있어서 테니스가 좋다"는 홍성찬은 "10년 후쯤 그랜드슬램을 이루고 싶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꼬마 페더러'라는 별명을 지닌 이덕희는 중학생이 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월드투어에 나서고 있다. 국제대회 랭킹점수를 쌓기 위함이다. 이덕희 선수의 어머니 박미자 씨는 "예전에는 페더러만 좋아했는데 요즘은 조코비치도 좋고, 나달도 좋다고 하더라"며 "메이저대회에 서보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어 박 씨는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쌓일수록 덕희가 많이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다"며 "(덕희가) 청각장애가 있지만 표정과 눈빛이 밝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테니스를 계속 하면서 꾸밈없고 당당한 성격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나 팬들이 덕희를 너무 예뻐해서 요즘 골치가 아프다"고 훈남 아들을 자랑했다.

백인준 감독은 "재능있는 어린 선수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어린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프로필
강구건
생년월일 : 1997년 1월 2일
신체조건 : 173cm, 64kg
학교 : 안동중 3학년 재학 중
경력 : 2011년 순창 국제주니어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우승
홍성찬
생년월일 : 1997년 6월 30일
신체조건 : 167cm, 52kg
학교 : 횡성 우천중 2학년
경력 : 2009년 주니어 오렌지볼 테니스 세계대회 남자단식 우승
2009년 에디허 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 남자단식 2위
이덕희
생년월일 : 1998년 5월 29일
신체조건 : 169cm, 58kg
학교 : 제천동중 1학년
경력 : 2010년 에디허 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우승

moon034@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