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야화/손인호의 남원땅에 잠들었네 ㅡ
 비내리는호남선/울어라키타줄/해운대엘레지/한많은대동강/
하룻밤풋사랑/나는울었네/짝사랑/청춘등대/물새야왜우느냐/
동백꽃일기/사랑찾아칠백리/함경도사나이/진주는천리길등..
50년대 최고의 가수 손인호(80)씨. 그가 마산에 왔다.
그리고 국립 3∙15묘지를 참배했다.
손씨는 자신이 부른 노래 중
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특히 인상 깊었던 곡이라고 했다.
잊히지 않는다고도 했다.
*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김주열열사를 기리는 곡이다.
1960년 차경철씨가 가사를 쓰고 한복남씨가 곡을 붙였다.
3∙15의거가 있던 날 저는 서울에 있었지요.
관절이 안좋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마산에 어떤 학생이
최루탄을 맞고 떠올랐다’고 소리치더군요.
1960년 4월 12일, 2차 마산의거가 시작된 날이다.
손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시위가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고 했다.
*손인호한테 노래를 맡기자 .....
같은 날 한복남씨와 작사가 차경철씨가 신문에 난
마산의거 기사를 보고 난 뒤 차씨는
한씨에게 이걸로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노래는 만들어졌다. 누구한테 부르게 할 것인가.
한씨는 자연스레 ‘손인호’를 떠올렸다.
제가 한복남씨와 고향이 같습니다. 형 동생 하는 사이지요.
한씨가 ‘노래를 만들었는데 네가 해야 한다. 너밖에 없다’더군요.
기꺼이 승낙했지요. 그 노래가 ‘남원 땅에 잠들었네’였다.
*노래를 부르는데 절로 눈물이......
수백 곡을 녹음했다고 자부하는 손씨.
모두 단 한 번 부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지만
‘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달랐다.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는데 김주열학생 얼굴이 자꾸 떠올라
저절로 울음이 나오더군요 .
처음 녹음은 울먹울먹 하면서 했습니다.
그래서 녹음을 3번이나 해야 했지요.
북에 고향을 둔 손씨는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를 때조차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히트곡이 금지곡으로 ......
노래를 만든 뒤 반응이 아주 좋았다.
한씨도 손씨에게 ‘야, 이건 대히트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학생들이 술을 마시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손씨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1961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나중에 한복남씨에게 들었는데
학생들에게 너무 자극을 준다고 곡이 금지됐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이 노래는 트로트풍인데도 당시 학생들이 많이 불렀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 이 노래를 녹음한 레코드회사도 부도가 났다.
이후.......... 노래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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