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와명상◇
노-鶴노인
형광등이
2006. 7. 31. 16:48
경북 어느 두메산골에 아버지와 그리고 아들이 살았습니다.
말이 아버지와 아들이지 아버지는 이제 검은 점이 얼굴 여기저기 피고,
쭈글쭈글한 맨 피부도 거의 없는 듯한, 앙상한 뼈만 남은
올해 90 노인의 치매 할아버지입니다.
3년 전부터 거동도 못하시므로 대소변은 올해 70세가 된
그의 아들이 받아 내야만 합니다.
비록 깊은 산골이라지만 30년전 까지만 해도 학가산이 토해내는
산 밑의 물로 비좁은 산골 모양 그 되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 쪼래기 땅들을 파먹으면서 올망졸망 열 집이 넘게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7-80년대 하나둘 도회지로 떠나고,
일부는 읍내 버스가 오는 산 아랫마을 큰 동네로 이사 가고
이제 이 산골에는 별, 달, 산, 바람, 그리고 버려진 땅과
달랑 걷지도 못 하는 노인과 종강이 다리에 핏줄이 검붉게 튀어 나오신
70대 늙은 아들만 남았습니다.
90 아버지도 명주실보다 더 희고 반짝이는 머리털이시고
그의 늙은 아들도 아버지처럼 유난히 희고 반짝이는 흰 머리 털이였습니다.
다들 아들이 논에서 풀을 뽑고 아버지가 논가에서 누워있으면
두 노인의 머리의 머리털만 보여서 머-얼리서 보면 마치 두 마리 학이
논 섶에 있는 듯하다 하였습니다.
90노인(아버지)을 모시고 사는 70세 늙은 아들은 객지에 자식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아부지요 이제 고마 그 골짜기에서 객지로 나 오이소”
했지만
도시 며느리들 눈치가 아파트 화장실보다 더 깔끔하고......
경운기 사고 소 키운다고 농협 빛을 내어서 자식들에게 말을 못하지만
지난해 고추농사로 겨우 사각 팬티 5섯장 사서 늙으신 아버지와
번갈아 같이 입고 사는 처지에 이래저래 곧 돌아가실 것만 같은
90세 아버지를 모시고 자식 집에 가기가 털걱 겁이 납니다.
그리도 또 언젠가,,,
밥하고, 늙은 아버지 옷 세탁하고 대소변 치우고, 밥 해드리고 논밭에 일하랴...
너무 힘에 부쳐서
“아부지 우리 서울 며느리 손자들 한데 가서 편하게 밥 얻어먹고 사시더!”
물어보니 호호백발 아버지가 한참을 앞산 중허리 道德골을 바라보시더니
“고조할배 증조할배가 저산에 계시고.... 그 할배들이 부치는 논밭정지가 멀쩡한데
우째 고향을 떠나노?”
“그래도 아부지요 우리도 죽기 전에 도시서 한번 살면서 호강한번 해보시더”
“그꾸 가고 싶거던 니딴메이(너나)나 도시로 가라카이!..
나는 이골에 살다가 할마이 옆에 뭍힐란다“
하시니 결국 70 늙은 아들이 이제 살짝 치매 끼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90세 아버지를 모시고 다들 도시로 떠나 텅텅 빈집들만 있는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어가면서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기 전에 이 산골에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사람 사는 소리들이 가득했던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아침나절엔 사랑방에서 양철 영감님이 아침상을 물리면서
아래채 며느리에게
“숭늉 떠온나!”
하는 고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온 마을에 다 들리고
집집마다 7-8남매 낳아서 키운 터라 동네 골목골목 아이들 조잘거리는 소리가
참새 떼 같았던 곳이기도 했던 마을입니다.
어디 그 뿐 입니까?
땅에 납작 엎드린 노가지 나무가 있는 샘가에는 하늘에 구름이 비치는
날씨 좋은 날에는 동네 아낙들이 석돌에 빨래하는 방방이 소리가 탕탕거리고
아이들의 돌 복숭아나무에 매달리는 소리,
돌담 골목길에서 술래잡기하는 소리
두칠네 똥개 짖는 소리
정석이네 집 장 닭 훼치는 소리
건너편 비탈 밭에서 덕술네 아주머니 깨 터는 소리
떡 버들 나무 아래 묶어 놓은 물거이
(물건너 마을에서 왔다고 물거이 댁) 댁 송아지 울음소리
아침 먹고 매일 디딜방아 집에 모여서 아낙들 쿵쿵 보리 찧는 소리.
알을 담뿍 물고 고개 숙인 수수밭에 참새 쫓는 소리
알미봉 서편으로 시커먼 구름이 천둥치며 후두둑 비를 뿌리며 몰려오면
산비탈에서 소 먹이던 아이들이
“벼락 친다!”
고함치며 냅다 마을로 내리 뛰는 소리.
염소 목에서 달랑거리는 목 방울 소리........
그런 삶의 소리는 모두들 돌개바람처럼 하나 둘 어디론가 객지로 사라지고
그저 남은 것이라고는 떨어진 문짝을 반쯤 달고 있는 빈집 마당에
개망초 꽃 혹은 살붙이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버리고 간 옹기 그릇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나팔꽃 무리들뿐입니다.
다들 하나 둘 떠나고 이제 마을에는 따-악 두 분만 남았습니다.
늙은 아들은 논밭 일을 할 때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꼭 모시고 나갔습니다.
두견새 우는 화창한 봄 날
고고조 할아버지가 직접 개간했다는 방앗골 천수답에 나가서 논일을 할 때는
늙은 아들은 쪼그란든 90세 아버지를 보고
“아부지 논에 나가시더”
하시며 어린아이보다 더 작아진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논으로 나갑니다.
혼자 우두커니 방안에서 90세 아버지를 두고 들에 일 나가기가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 화창한 봄날 아버지에게도 밭머리에 늘 아름답게 피는
돌 복숭아 꽃도 보여주고 싶고 여기저기 날러 다니는 나비나
종달새 울음도 들려주고 싶어서 입니다.
그날도 70세 늙은 아들 농부는 논 뚝 섶에 화들짝 붉게 핀 돌 복숭아 나무아래
90세 아버지를 내려놓고는
“아부지요 여기서 피곤하면 주무시고요 혹 목마르면 이 지팡이로
이 복숭아 나무를 탁탁 치이소..
그라만 내 서래질 하다가도 우물에 달려가 시원한 찬물 떠다가 드림시더!”
그렇게 아이처럼 작아진 늙은 아버지를 늘 들까지 지게에 지고 가서는
자기가 일하는 가까운 곳에 내려놓고 논이나 밭에 들어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어느 봄날 모심기를 마친 논에 짙푸르게 벼이삭이 자랄 무렵입니다.
노인이 늙은 아들을 보고 갑자기
"왜 논바닥에 학이 안 오노?...애비야 나는 죽기 전에 鶴이 보고 접다!“
힘없이 말 하셨습니다.
치매 끼가 있어서 방금 식사를 하고도
“왜 니만 밥 먹고 나는 밥 안 주노?”
말하실 정도니 늙은 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그냥 지나쳤지만
그날 이후 노인은 정말로 학이 보고 싶은지 자꾸만
‘학이 왜 안 오노...전에는 학이 많이 날러 왔는 논인데...학이 왜 안 오노?“
자꾸만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아부지요..논에 농약을 많이 치는 세월이라서 논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제 그런 새는 안 오니더”
대답했지만 노인은 자꾸만 학 타령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고조 할배 논에 학이 오면 좋겠다..나는 학이 보고 싶다"
그랬습니다.
옛날에는 이맘때쯤 앞 논에는
논우렁이 기어 다니고
물방개도 헤엄치고
소금쟁이도 물위를 뛰어다니고
땅강아지도 뽀지락 거리면서 논둑을 헤집고
올챙이들도 까만 녹두알처럼 떼거리로 태어나
햇빛 가득한 웅덩이나 따뜻해진 논물에 모여 개구리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매일처럼 목이 긴 鶴이 날아와서
고고한 자태로 벼논에 의젓한 양반걸음으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대 소출을 많이 내려고 화학 비료를 많이 치고, 도열병이다 이화병이다
병은 점점 더 많아지고 방제를 위해서 독한 농약을 치고는 그 모든 살붙이들이
논에서 몽땅 사라지고 이제 더 이상 鶴도 논에 날러오지를 않았습니다.
이미 육신이 쇠진하여 분별이 흐리고 기억이 사라졌지만
분명 노인은 논에 하얀 백로나 학이 노닐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논 섶에서 힘없이 비스듬이 누워서 논 한가운데서 일하는 늙은 아들을
휘고 흰 머리털을 바라보면서 더 늙은 아버지 노인은
“나는 학이 보고 접다! 나는 학이 보고 접다!”
자꾸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논에 옛날처럼 학이 날러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자꾸 조르자
늙은 아들은 이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혹 이러시다가
올해 안에 돌아가신다면 정말로 보고 싶은 학을 못 보고 돌아가실 것 같아
서둘러 아버지에게 고조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산골 천수답에
늙은 아버지를 위하여 鶴을 불러 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제치고 이골저골 버려진 땅 귀퉁이에 버려진 웅덩이를 찾아서
왠 종일 혼자 물을 푸기 시작했습니다.
왜야하면 그런 웅덩이에는 농약 피해가 없어서 아직도 학이 좋아하는
우렁이나 개구리 혹은 미꾸라지도 살아 있습니다.
몇날 며칠을 이골저골 웅덩이를 뒤져서 드디어 제법 많은 양의 논우렁이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은 아버지 주무신 밤에 몰래 논에 나가서 우렁이를
여기저기 논 가운데 뿌리기 시작 했습니다.
또 아들은 鶴이 좋아하는 논 붕어를 잡으로 이 저수지 저 저수지를 돌아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붕어는 원래 산란을 논에 했습니다.
작은 붕어들이 한 여름철 벼논에서 자라다가 가을 전에 큰물을 타고
강으로, 큰 저수지로, 혹은 논에 있던 큰 웅덩이로 가서 일생을 사는데
가을 벼가 누렇게 익어가지 직전 산골 사람들은 논 물고에 모여 있는
일년생 작은 물고기를 사발로 잡아서 먹기도 했을 정도로
옛날에는 논에 붕어들이 많았습니다.
아들은 그 작은 논 붕어들이 많아야만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졸라 되는 鶴 이
논에 찾아온다는 것을 아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늙은 아들이 아버지 소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논우렁이, 미꾸라지, 논 붕어들을 잡으로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고
산골 농사꾼들도 붕어를 잡거나 미꾸라지를 잡으면 그 늙은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마침내 푸르게 자라는 벼 논 사이로 미꾸라지니 붕어니 우렁이들이
뜨거운 칠월의 햇살과 소낙비를 맞으면서 토실토실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늙은 아들은 벼가 자라는 것보다
그 벼논에 늙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학이 날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 후 하늘에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7월 말 무렵.
이게 왠일입니까?
드디어 목긴 鶴이 한 마리도 아니고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할아버지 논에 찾아 들었습니다.
새벽에 논에 나갔던 아들은 논에 학을 보고는 너무 기뻐서 헐래 벌떡
집으로 달려오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아부지 鶴이 날러 왔니더어!
그리고는 황급히 아버지를 지게에 올려서
당당 걸음으로 삿갓배미 논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오! 과연 푸른 논 한 가운데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서너 마리의 희고 흰 학이
정말로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습니다.
“鶴이다! 鶴이구나!
노인은 학을 보자 손 벽을 치면서 깔깔 웃었습니다.
학이 놀란 눈으로 목을 길게 빼고 노인을 처다 보았습니다
노인의 치매 끼가 섞인 깔깔 웃음은
정영 순순한 어린애 웃음으로 삿갓배미 천수답 산골을 울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근간에 처음 보았습니다.
그 후 학들이 그 작은 삿갓배미 논에 우렁이와 논 붕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늘 날아들었고 노인은 매일 학을 보고 싶다면
아들의 지게를 타고 논에 나가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러나 벼는 지난해보다 잘 자라지 아니했습니다.
왜야하면 행여 논우렁이나 논 붕어들이 죽을까
일체의 농약을 뿌리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늙은 아들은 비록 쌀이 적게 나오더라도 늙은 아버지가 보면서
어린아리처럼 좋아하시는 학이 날러 올 수 있도록
절대 농약이나 비료는 치지 아니하고 가능한 내년에도 퇴비를 넣어서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얼마간 떨어진 떡 버들 나무아래서 비스듬이 누워서 매일 학이 날러오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노인의 머리도 학처럼 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의 학들이 또 날러 와서는 고고하게 벼논을 거닐다가
노인이 잠들자 학들도 외다리를 하고는 졸고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그늘 밑에서 행복하게 잠들자 그 옆에 있던 70세 늙은 아들은
그 제서야 지게에 몸을 기대어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습니다.
저 만치 하늘엔 뭉게구름이 또 뭉실뭉실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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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아 그름아 하는 놈이
얼마 전 시골에 내려가서 친구와 함께 낚시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도 우리 아버지가 늘 일하시는 논에 학이 놀로 오기를 바라면서
그 날 잡은 붕어를 우리 논에 솥아 부었습니다.
순 엉터리 같은 흉내 짓거리입니다만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일하시는 논에
학이 정말로 날러 오기를 기다리는 세월 입니다.
2006년 7월 23일
조정래
말이 아버지와 아들이지 아버지는 이제 검은 점이 얼굴 여기저기 피고,
쭈글쭈글한 맨 피부도 거의 없는 듯한, 앙상한 뼈만 남은
올해 90 노인의 치매 할아버지입니다.
3년 전부터 거동도 못하시므로 대소변은 올해 70세가 된
그의 아들이 받아 내야만 합니다.
비록 깊은 산골이라지만 30년전 까지만 해도 학가산이 토해내는
산 밑의 물로 비좁은 산골 모양 그 되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 쪼래기 땅들을 파먹으면서 올망졸망 열 집이 넘게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7-80년대 하나둘 도회지로 떠나고,
일부는 읍내 버스가 오는 산 아랫마을 큰 동네로 이사 가고
이제 이 산골에는 별, 달, 산, 바람, 그리고 버려진 땅과
달랑 걷지도 못 하는 노인과 종강이 다리에 핏줄이 검붉게 튀어 나오신
70대 늙은 아들만 남았습니다.
90 아버지도 명주실보다 더 희고 반짝이는 머리털이시고
그의 늙은 아들도 아버지처럼 유난히 희고 반짝이는 흰 머리 털이였습니다.
다들 아들이 논에서 풀을 뽑고 아버지가 논가에서 누워있으면
두 노인의 머리의 머리털만 보여서 머-얼리서 보면 마치 두 마리 학이
논 섶에 있는 듯하다 하였습니다.
90노인(아버지)을 모시고 사는 70세 늙은 아들은 객지에 자식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아부지요 이제 고마 그 골짜기에서 객지로 나 오이소”
했지만
도시 며느리들 눈치가 아파트 화장실보다 더 깔끔하고......
경운기 사고 소 키운다고 농협 빛을 내어서 자식들에게 말을 못하지만
지난해 고추농사로 겨우 사각 팬티 5섯장 사서 늙으신 아버지와
번갈아 같이 입고 사는 처지에 이래저래 곧 돌아가실 것만 같은
90세 아버지를 모시고 자식 집에 가기가 털걱 겁이 납니다.
그리도 또 언젠가,,,
밥하고, 늙은 아버지 옷 세탁하고 대소변 치우고, 밥 해드리고 논밭에 일하랴...
너무 힘에 부쳐서
“아부지 우리 서울 며느리 손자들 한데 가서 편하게 밥 얻어먹고 사시더!”
물어보니 호호백발 아버지가 한참을 앞산 중허리 道德골을 바라보시더니
“고조할배 증조할배가 저산에 계시고.... 그 할배들이 부치는 논밭정지가 멀쩡한데
우째 고향을 떠나노?”
“그래도 아부지요 우리도 죽기 전에 도시서 한번 살면서 호강한번 해보시더”
“그꾸 가고 싶거던 니딴메이(너나)나 도시로 가라카이!..
나는 이골에 살다가 할마이 옆에 뭍힐란다“
하시니 결국 70 늙은 아들이 이제 살짝 치매 끼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90세 아버지를 모시고 다들 도시로 떠나 텅텅 빈집들만 있는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어가면서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기 전에 이 산골에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사람 사는 소리들이 가득했던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아침나절엔 사랑방에서 양철 영감님이 아침상을 물리면서
아래채 며느리에게
“숭늉 떠온나!”
하는 고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온 마을에 다 들리고
집집마다 7-8남매 낳아서 키운 터라 동네 골목골목 아이들 조잘거리는 소리가
참새 떼 같았던 곳이기도 했던 마을입니다.
어디 그 뿐 입니까?
땅에 납작 엎드린 노가지 나무가 있는 샘가에는 하늘에 구름이 비치는
날씨 좋은 날에는 동네 아낙들이 석돌에 빨래하는 방방이 소리가 탕탕거리고
아이들의 돌 복숭아나무에 매달리는 소리,
돌담 골목길에서 술래잡기하는 소리
두칠네 똥개 짖는 소리
정석이네 집 장 닭 훼치는 소리
건너편 비탈 밭에서 덕술네 아주머니 깨 터는 소리
떡 버들 나무 아래 묶어 놓은 물거이
(물건너 마을에서 왔다고 물거이 댁) 댁 송아지 울음소리
아침 먹고 매일 디딜방아 집에 모여서 아낙들 쿵쿵 보리 찧는 소리.
알을 담뿍 물고 고개 숙인 수수밭에 참새 쫓는 소리
알미봉 서편으로 시커먼 구름이 천둥치며 후두둑 비를 뿌리며 몰려오면
산비탈에서 소 먹이던 아이들이
“벼락 친다!”
고함치며 냅다 마을로 내리 뛰는 소리.
염소 목에서 달랑거리는 목 방울 소리........
그런 삶의 소리는 모두들 돌개바람처럼 하나 둘 어디론가 객지로 사라지고
그저 남은 것이라고는 떨어진 문짝을 반쯤 달고 있는 빈집 마당에
개망초 꽃 혹은 살붙이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버리고 간 옹기 그릇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나팔꽃 무리들뿐입니다.
다들 하나 둘 떠나고 이제 마을에는 따-악 두 분만 남았습니다.
늙은 아들은 논밭 일을 할 때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꼭 모시고 나갔습니다.
두견새 우는 화창한 봄 날
고고조 할아버지가 직접 개간했다는 방앗골 천수답에 나가서 논일을 할 때는
늙은 아들은 쪼그란든 90세 아버지를 보고
“아부지 논에 나가시더”
하시며 어린아이보다 더 작아진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논으로 나갑니다.
혼자 우두커니 방안에서 90세 아버지를 두고 들에 일 나가기가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 화창한 봄날 아버지에게도 밭머리에 늘 아름답게 피는
돌 복숭아 꽃도 보여주고 싶고 여기저기 날러 다니는 나비나
종달새 울음도 들려주고 싶어서 입니다.
그날도 70세 늙은 아들 농부는 논 뚝 섶에 화들짝 붉게 핀 돌 복숭아 나무아래
90세 아버지를 내려놓고는
“아부지요 여기서 피곤하면 주무시고요 혹 목마르면 이 지팡이로
이 복숭아 나무를 탁탁 치이소..
그라만 내 서래질 하다가도 우물에 달려가 시원한 찬물 떠다가 드림시더!”
그렇게 아이처럼 작아진 늙은 아버지를 늘 들까지 지게에 지고 가서는
자기가 일하는 가까운 곳에 내려놓고 논이나 밭에 들어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어느 봄날 모심기를 마친 논에 짙푸르게 벼이삭이 자랄 무렵입니다.
노인이 늙은 아들을 보고 갑자기
"왜 논바닥에 학이 안 오노?...애비야 나는 죽기 전에 鶴이 보고 접다!“
힘없이 말 하셨습니다.
치매 끼가 있어서 방금 식사를 하고도
“왜 니만 밥 먹고 나는 밥 안 주노?”
말하실 정도니 늙은 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그냥 지나쳤지만
그날 이후 노인은 정말로 학이 보고 싶은지 자꾸만
‘학이 왜 안 오노...전에는 학이 많이 날러 왔는 논인데...학이 왜 안 오노?“
자꾸만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아부지요..논에 농약을 많이 치는 세월이라서 논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제 그런 새는 안 오니더”
대답했지만 노인은 자꾸만 학 타령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고조 할배 논에 학이 오면 좋겠다..나는 학이 보고 싶다"
그랬습니다.
옛날에는 이맘때쯤 앞 논에는
논우렁이 기어 다니고
물방개도 헤엄치고
소금쟁이도 물위를 뛰어다니고
땅강아지도 뽀지락 거리면서 논둑을 헤집고
올챙이들도 까만 녹두알처럼 떼거리로 태어나
햇빛 가득한 웅덩이나 따뜻해진 논물에 모여 개구리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매일처럼 목이 긴 鶴이 날아와서
고고한 자태로 벼논에 의젓한 양반걸음으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대 소출을 많이 내려고 화학 비료를 많이 치고, 도열병이다 이화병이다
병은 점점 더 많아지고 방제를 위해서 독한 농약을 치고는 그 모든 살붙이들이
논에서 몽땅 사라지고 이제 더 이상 鶴도 논에 날러오지를 않았습니다.
이미 육신이 쇠진하여 분별이 흐리고 기억이 사라졌지만
분명 노인은 논에 하얀 백로나 학이 노닐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논 섶에서 힘없이 비스듬이 누워서 논 한가운데서 일하는 늙은 아들을
휘고 흰 머리털을 바라보면서 더 늙은 아버지 노인은
“나는 학이 보고 접다! 나는 학이 보고 접다!”
자꾸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논에 옛날처럼 학이 날러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자꾸 조르자
늙은 아들은 이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혹 이러시다가
올해 안에 돌아가신다면 정말로 보고 싶은 학을 못 보고 돌아가실 것 같아
서둘러 아버지에게 고조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산골 천수답에
늙은 아버지를 위하여 鶴을 불러 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제치고 이골저골 버려진 땅 귀퉁이에 버려진 웅덩이를 찾아서
왠 종일 혼자 물을 푸기 시작했습니다.
왜야하면 그런 웅덩이에는 농약 피해가 없어서 아직도 학이 좋아하는
우렁이나 개구리 혹은 미꾸라지도 살아 있습니다.
몇날 며칠을 이골저골 웅덩이를 뒤져서 드디어 제법 많은 양의 논우렁이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은 아버지 주무신 밤에 몰래 논에 나가서 우렁이를
여기저기 논 가운데 뿌리기 시작 했습니다.
또 아들은 鶴이 좋아하는 논 붕어를 잡으로 이 저수지 저 저수지를 돌아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붕어는 원래 산란을 논에 했습니다.
작은 붕어들이 한 여름철 벼논에서 자라다가 가을 전에 큰물을 타고
강으로, 큰 저수지로, 혹은 논에 있던 큰 웅덩이로 가서 일생을 사는데
가을 벼가 누렇게 익어가지 직전 산골 사람들은 논 물고에 모여 있는
일년생 작은 물고기를 사발로 잡아서 먹기도 했을 정도로
옛날에는 논에 붕어들이 많았습니다.
아들은 그 작은 논 붕어들이 많아야만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졸라 되는 鶴 이
논에 찾아온다는 것을 아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늙은 아들이 아버지 소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논우렁이, 미꾸라지, 논 붕어들을 잡으로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고
산골 농사꾼들도 붕어를 잡거나 미꾸라지를 잡으면 그 늙은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마침내 푸르게 자라는 벼 논 사이로 미꾸라지니 붕어니 우렁이들이
뜨거운 칠월의 햇살과 소낙비를 맞으면서 토실토실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늙은 아들은 벼가 자라는 것보다
그 벼논에 늙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학이 날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 후 하늘에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7월 말 무렵.
이게 왠일입니까?
드디어 목긴 鶴이 한 마리도 아니고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할아버지 논에 찾아 들었습니다.
새벽에 논에 나갔던 아들은 논에 학을 보고는 너무 기뻐서 헐래 벌떡
집으로 달려오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아부지 鶴이 날러 왔니더어!
그리고는 황급히 아버지를 지게에 올려서
당당 걸음으로 삿갓배미 논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오! 과연 푸른 논 한 가운데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서너 마리의 희고 흰 학이
정말로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습니다.
“鶴이다! 鶴이구나!
노인은 학을 보자 손 벽을 치면서 깔깔 웃었습니다.
학이 놀란 눈으로 목을 길게 빼고 노인을 처다 보았습니다
노인의 치매 끼가 섞인 깔깔 웃음은
정영 순순한 어린애 웃음으로 삿갓배미 천수답 산골을 울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근간에 처음 보았습니다.
그 후 학들이 그 작은 삿갓배미 논에 우렁이와 논 붕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늘 날아들었고 노인은 매일 학을 보고 싶다면
아들의 지게를 타고 논에 나가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러나 벼는 지난해보다 잘 자라지 아니했습니다.
왜야하면 행여 논우렁이나 논 붕어들이 죽을까
일체의 농약을 뿌리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늙은 아들은 비록 쌀이 적게 나오더라도 늙은 아버지가 보면서
어린아리처럼 좋아하시는 학이 날러 올 수 있도록
절대 농약이나 비료는 치지 아니하고 가능한 내년에도 퇴비를 넣어서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얼마간 떨어진 떡 버들 나무아래서 비스듬이 누워서 매일 학이 날러오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노인의 머리도 학처럼 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의 학들이 또 날러 와서는 고고하게 벼논을 거닐다가
노인이 잠들자 학들도 외다리를 하고는 졸고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그늘 밑에서 행복하게 잠들자 그 옆에 있던 70세 늙은 아들은
그 제서야 지게에 몸을 기대어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습니다.
저 만치 하늘엔 뭉게구름이 또 뭉실뭉실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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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아 그름아 하는 놈이
얼마 전 시골에 내려가서 친구와 함께 낚시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도 우리 아버지가 늘 일하시는 논에 학이 놀로 오기를 바라면서
그 날 잡은 붕어를 우리 논에 솥아 부었습니다.
순 엉터리 같은 흉내 짓거리입니다만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일하시는 논에
학이 정말로 날러 오기를 기다리는 세월 입니다.
2006년 7월 23일
조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