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오락♣

밥 먹듯이 기권패, 프로 맞아?

형광등이 2016. 5. 13. 13:13

밥 먹듯이 기권패, 프로 맞아?

'프로 정신' 없는 프로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일벌백계 해야
2016-05-13 오후 12:13:33          
▲ 타이젬이 국내 언론 매체 중 유일하게 중국 상하이로 날아가서 '단독 취재' 했던 응씨배 현장. 중국2위 스웨가 '일본의 마지막 잎새' 고노린을 제압했던 16강 경기 장면이다. 

세계 최고수들이 대국을 벌이는 승부의 현장은 언제나 바둑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반대로, 세계 최고수들의 대국 현장을 보고도 설레지 않는다면 바둑 팬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늘 지척에서 지켜보고, 생생한 현장을 바둑 팬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바둑전문기자에게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매일 보는 바둑이지만 누구보다 더 가슴 뛰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사람만이 바둑전문기자의 자질이 있다고 확신한다.

바둑전문기자라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세계 최고수들의 대국 현장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난 4월20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졌던 '바둑 올림픽' 응씨배 현장에 취재를 간 국내 언론 매체는 타이젬이 유일했다.

바둑계가 '알파고 특수'를 누리던 상황에서 최고의 흥행카드 이세돌과 커제, 박정환이 총 출동했음에도, 바둑TV 등 바둑방송을 비롯한 방송사와 인터넷 바둑 매체 그리고 기타 언론사 등 어느 곳에서도 현장 취재를 가지 않았다. 만약 타이젬 마저 취재를 가지 않았다면, 응씨배 현장에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사실 그 이유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 특히 외국 주최 세계대회의 경우 숙박비를 포함한 출장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

이번 응씨배가 열리기 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 언론사 몇 군데에서 숙박비를 비롯한 경비 일부를 지원해줄 수 있는지 주최측인 응씨교육기금회에 문의했다고 한다.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오자, 하나 같이 출장을 포기했다는 후문. 덕분에 응씨배 사상 유례 없이 본선28강과 16강, 그리고 8강전까지 한 번에 모두 치러 7박8일에 일정이 소요됐던 '상하이 혈전'을 타이젬은 단독 취재 보도할 수 있었다.

각설하고,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를 취재하는 게 용이하지 않다면 국내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는 그야말로 '빅 이벤트'가 된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중국과 일본 탑랭커들의 대국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31일부터 시작된 제21회 LG배 통합예선은 바둑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바둑전문기자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특히, 시드를 받은 커제 구리 천야오예 미위팅 등 4명을 제외한 중국 탑랭커 전원이 출격하므로, 이들의 대국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었다.

LG배는 한국 주최 세계대회이므로, 박정환 이세돌 등 한국 탑랭커들은 대부분 본선 시드를 받았다. 중국1위 커제 또한 본선 시드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LG배 통합예선의 '거물'은 단연 중국2위 스웨였다. 스웨는 현재 응씨배 8강에도 올라간 상태로, 커제에게 밀려 다소 주춤하지만 여전히 한국에 위협이 되는 강자다.

LG배 통합예선은 추첨 결과 한 판의 대국을 더 치러야 하는 선수들의 1회전 작은 조 경기로 포문을 열었다. 대진표를 확인하던 기자는 L조 1회전에 스웨가 출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연히, 카메라에 제일 먼저 담을 바둑은 스웨-남치형 대결로 낙점됐다.

하지만 이날, 스웨의 대국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1회전 상대였던 남치형이 대국장에 나오지 않아 기권패가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스웨의 대국 사진과 함께 뉴스 속보를 타전하려던 기자의 계획 또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바둑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프로기사들의 예선 대국 현장을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위 '투잡'을 하거나, 스스로 승부의 일선에서 물러난 프로기사들의 고질적인 기권패 문제로 한국기원이 수 년 전부터 골머리를 앓아왔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기원에서는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과거 모든 프로기사를 자동으로 예선에 배치하던 것과 달리 각 기전마다 프로기사들이 스스로 '참가신청'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 그러니까 2015년 12월부터 시행됐는데, 발표되자 마자 기자는 무릎을 쳤다. 최근 부쩍 '젊어진' 한국기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기대에 부응하듯 일리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참가신청' 시스템이 이제서야 도입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모든 프로기사들은 바둑 한 판 한 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 정상이다.

프로기사의 숫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반대로 기전 숫자는 지금보다 더 많았던 20~30년 전에는 한 번 대회를 열면 수 십 판씩 기권패가 나오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프로 정신'이 있던 시절이었고, 바둑은 당연히 '예도'라는 인식이 있던 때였다.

바둑이 어설프게 스포츠를 표방하고 나선 이후, 그리고 프로기사들의 평균 연령이 대거 높아진 이후엔 이상할 정도로 기권패가 늘어났다. 예선 대국료가 적거나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식의 변명이 주를 이루는데, 그게 문제라면 애초에 바둑이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로 들어가려고 용을 쓸 때부터 반대를 했어야 한다.

어떤 스포츠에도 예선 1회전부터 참가하는 '하급 선수'들에게 예우 차원에서의 경기료를 지급하지는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 올라왔을 때, 그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지급하는 '상금제'는 스포츠의 핵심이고, 반대로 예선 1회전에 불과할지라도 한 판의 대국을 할 때마다 지급했던 과거의 '대국료'는 프로기사를 한 사람의 예술사로서 인정해 그 작품에 대한 예우의 의미로 지급하던 것이었다.

현재 바둑은 스포츠가 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바둑에 스포츠적인 속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방하고 맞춰가며 스포츠의 탈을 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일각에선 '바둑 자체가 그리고 바둑 시장이 전체 체육계 혹은 전체 체육 시장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와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바둑계는 굳이 대한체육회 밑으로 들어가서 산하 단체가 되기 위해 고생을 자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시각도 있었다.

바둑이 스포츠냐 스포츠가 아니냐, 혹은 스포츠가 되어야 하는가 아닌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여기서 한 두 마디로 정의될 사안이 아니므로, 향후 다시 논하기로 한다.

어찌됐든, 현재 바둑은 스포츠인 척 하고 있고 따라서 그에 맞춰서 규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참가신청' 제도는,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합리적이다. 이 방식은 프로기사 본인이 스스로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본인 ID로 로그인 한 후, 해당 기전에 직접 참가신청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첫 시행 당시 이렇게 할 경우 기권패 숫자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실제로 최근엔 아무 이유 없는 기권패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권패를 일삼는 몰상식한, 그리고 프로의 자격이 전혀 없는 프로기사들이 많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 참가신청을 해놓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기권하는 건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떤 스포츠에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아무런 제제도 없이 용인하지는 않는다.

참가신청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기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항을 만들었다.

"기사가 참가 신청을 한 대회에서 무단으로 불참할 경우 해당 기전 1회 출전 정지의 징계를 받는다. 단, 징계에 이의가 있을 경우 불참일로부터 1주일 이내에 사무국에 불참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한다."

위 조항 또한 굉장히 합리적이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남치형을 포함해 LG배 통합예선에 기권했던 일부 프로기사들은 한국기원 사무국에 불참 사유서를 제출했을까?

기자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까지 단 한 장의 불참 사유서도 기전 사무국에 제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LG배가 열린 건 4월이므로, 이미 1주일이 훨씬 더 지났다. 위 조항은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었으므로, 아직까지 출전 정지가 적용된 사례는 없다.

적어도 내년부터는 적용 사례가 속출할 걸로 예상되는데, 일단 이번 LG배 통합예선에 스스로 신청을 하고도 불참했던 모든 프로기사는 다음 대회에는 출전 자격이 없다.

▲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되는 프로기사들의
성적표. 기권패 여부는 표기 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보지 않고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남치형은 2009년 2월11일 강승희를 상대로 여류 명인전 예선 1회전에서 승리한 후 41연패를 당했고, 이 중에는 양자패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2012년 6월26일 명인전 예선 1회전에서 임순택을 꺾고 41연패의 사슬을 끊었지만, 이번 LG배 기권패를 포함해 현재까지 28연패를 당하고 있다. 이 중 기자가 확인하지 못했던 기권패가 몇 판이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프로기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기권을 밥 먹듯이 하는 기사들은 한 둘이 아니다. 남치형뿐만 아니라, 성적이 최하위권인 프로기사들 대부분은 스포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팬'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앞서 바둑과 스포츠에 대한 논의를 잠깐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는 바둑이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포츠와 예술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기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스포츠에선 선수들 못지 않게 팬, 즉 관중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예술에선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팬은 필요 없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예술가를 무한히 배려하며 기다리는 것만이 팬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경기 전에도 경기 후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경기 중에도 팬들을 의식하는 게 당연하다. 팬이 없으면 스포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시각에서 봤을 때, 바둑은 스포츠보다는 예술에 더 가깝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박정환과 커제의 대국이 큰 경기장에서 수 천 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환호성과 함께 치러지면 좋겠다는 건 그저 상상에 그칠 뿐 전혀 실현 될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둑 팬들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박정환과 커제가 최선을 다해 만든 하나의 작품, 즉 기보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기는 게 아직까지는 더 익숙하지 않은가. 이건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바둑계를 대표하는 단체 중 하나인 대한바둑협회는 현재 대한체육회 산하에 있다. 위와 같은 고민을 바둑계 수뇌부들이 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바둑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는 '대의'에 동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당사자인 프로기사들이 어떠한 반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예술임이 확실한 바둑이 스포츠를 향해 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한 프로기사들이 이제 와서 스포츠의 생리와 상식을 따르지 않겠다고 버티는 건 어불성설이다.

스포츠에서는 하급 선수들을 예우하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중요한 건 공정하게 제공되는 기회, 딱 그것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선수 본인이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해야 할 일들 투성이고, 그게 싫으면 '은퇴'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가면 된다.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굳이 팬들의 원성을 들어가면서까지 은퇴를 하지 않고 버티는 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프랑스 대통령 선거까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지네딘 지단 또한 '은퇴'를 했다. 지단이 프랑스 축구계를 위해 공헌한 공로가 부족해서, 혹은 프랑스 축구계로부터 '예우'를 받지 못해서 은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축구가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포츠 선수로서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없으면 '당연히'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상식이기 때문에 은퇴를 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지단은 현재 '지구 방위대'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을 맡아 감독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한 때 프로기사를 꿈꾸며 학창 시절의 전부를 한국기원 연구생실에서 보냈던 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 덧붙인다. LG배와 같은 통합예선에 출전할 기회를 얻은 아마추어 출전자, 혹은 갓 입단한 새내기 프로들이라면 누구라도, 대진표를 확인했는데 본인 이름 옆에 스웨가 있다면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른다. '세계 탑랭커와 승부 할 기회를 얻게 되다니!'

대국 기회가 절실한 연구생이나 아마추어 기사 혹은 새내기 프로기사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프로기사라면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다. 혹시 한국 랭킹 10위권 안 쪽이어서 예선 통과를 기대했는데 스웨를 만난 거라면, '이번 대회는 대진운이 없네'라고 생각하는 것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겠다.

'스포츠 바둑' 시대에 팬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한 경기를 보여줄 수 없다면, 아니 기권패나 일삼을 거라면 차라리 은퇴를 하는 게 낫다. 사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예선 경기도 모든 대국의 기보가 기록되어야 한다. 기록자를 투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대국에서 승리한 프로기사가 직접 기보를 적어 제출하는 방식이라도 당장 도입해야 마땅하다. 이 문제에 대해선 향후 다른 글을 통해 논하기로 한다.

합리적인 제도와 규정을 마련했음에도, 여전히 한국기원은 프로 자격이 없는 기사들의 속출하는 기권패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참에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해당 프로기사들을 일벌백계 하면 어떨까.

고인 물은 썪기 마련이다. '알파고 이후' 바둑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프로기사 본인이 스스로 신청한 후 기권패' 문제가 부각된다면, 간신히 끌어온 팬들을 모두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LG배 통합예선에서 같은 중국 선수 옌환에게 패
해 탈락한 스웨. 1회전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기어코
스웨의 대국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 LG배 통합예선 1회전이 벌어지기 8일 전이었던
3월23일, 여류 국수전 예선 대국을 벌이고 있는 남치형.
불참 사유서가 제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LG배 예선에는
왜 출전하지 않았는지 알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