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허허●

과부호떡장사와 신사

형광등이 2014. 10. 3. 14:14

리어카 밖으로 지나가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어디엔가는 있을 남편을 떠올렸다. 어쩌면 저 하늘에 있을까. 무정하고 무책임한 사람. 무척이나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보고 싶지도 않을까. 소식도 없이 3남매만 남겨놓고 떠난 지도 벌써 5년째다. 남편에 대한 원망스러움도 이젠 들지도 않았다. 그런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너무나 현실이 냉혹하고 고달팠다.

 

중1인 큰딸애가 학교 갔다 와서는 장사를 거들어 주어 그나마 조금 수월했다. 그 흔한 학원에도 못 보내 주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이젠 호떡 반죽과 굽는 것이 몸에 배어 석봉 어미처럼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수입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 키우고 학교 보내고 밥 먹는 데는 지장이 없어 허리가 아프고 몸이 불편할 때도 가벼운 마음으로 참았다. 이 장사마저 놓치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살란 말인가.

 

가끔은 죽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호떡 기름에도 버터를 듬뿍 넣고 양도 다른 데보다 조금 크게 하니까 입소문이 나서 손님들도 꽤 많아졌다. 고달파도 신이 났고 파랑새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어느 날, 중년의 신사가 호떡 하나 얼마냐고 묻는다. “1,000원입니다.”

 

신사는 호주머니에서 천 원 지폐 한 장을 호떡 소쿠리에 담아 놓고 말없이 돌아섰다. 그녀는 “선생님, 호떡 가져가세요?” 하고 불렀지만 신사는 멀리 사라졌다.

 

신사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늘 천 원 지폐를 말없이 놓고 가곤 했다. 그녀는 신사만 보면 마음이 두근두근하고 미안함에 어쩔 줄 몰랐다. 거기다 자기도 알 수 없는 어떤 감정까지 뒤섞여서 뭉클하기까지 했다. 이젠 신사만 보면 몸과 입이 얼어 고맙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신사와의 인연이 이어진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 갔다. 비가 오나 천둥이 치나 그들의 어색하면서도 끈끈한 만남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그녀는 신사가 안 오는 날은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어김없이 신사는 천 원 지폐를 놓고 간다. 늘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가슴에만 묻어두고 망설이다가 신사는 멀리 가버리고 만다. 그런 날은 자신의 미지근하고 소극적인 마음을 스스로 책망하기까지 했다.

 

하얀 눈발이 날리고 캐롤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누구나 설레고 없는 추억이라도 불러내고 싶은 들뜬 밤이었다. 리어카 앞에는 젊은 남녀가 커플 점퍼를 입고 즐겁게 담소하며 호떡을 먹고 있었다. 그녀도 여자고 사람이어서 은근히 부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시선은 검은 철판에 고정시키고 호떡 굽는 데만 열중했다.

 

늘 그렇듯 그날도 신사는 천 원 지폐를 슬그머니 소쿠리에 놓았다. 그녀는 그날만은 작심이라도 한 듯 용기를 내어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신사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사는 그녀의 눈동자와 입술을 차분하게 보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주저하면서 그녀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분명한 어조였다.

 

“호떡이 1,500원으로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