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오락♣

흑과 백의 인생철학

형광등이 2008. 2. 5. 10:53
흑과 백의 대결 통해 인생과 철학적 메시지 담는 그릇

바둑의 기원과 한국 역사 바둑의 기원은 누구에 의해서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전해지는 문헌이 없어 설화에 의해 추정할 뿐이다.
<태평어람>에 요나라 임금이 아들 단주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단주가 바둑을 썩 잘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 상고 때부터 바둑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논어>에 공자가 이르기를 '바둑 두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진 일이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고대 중국에서는 많이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바둑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로 보인다.
<삼국유사>괘관조에 따르면 신라 효성왕이 즉위하기 전 왕자로 있을 때
신충과 함께 대궐 안 잣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여성들도 바둑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문호 이규보가 평양 기생 진주가 바둑이 상당한 고수임을 알고
한판 두기를 바라는 내용의 시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바둑 두는 법 현재 통용되는 바둑은 일본식 바둑이다.
바둑은 흑돌과 백돌을 바둑판 위에 점인 집에 교대로 놓으면서
집을 많이 차지하는 게임으로 궁극적으로는 집을 많이 차지 한 쪽이 이긴다.

이때 실력이 강한 사람은 상수라고 해서 백돌을 가지며
약한 사람은 하수라고 하여 흑돌을 가지고 둔다.

한쪽이 항상 백돌을 가지거나 흑돌을 가지고 두는 상수와 하수 사이를 정선이라고 하며
흑돌과 백돌을 교대로 가지고 두는 즉 실력이 비슷한 사이를 호선이라고 한다.
바둑을 둘 때 앉는 자리에는 상좌라는 것이 있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선배를 상좌에 앉게 하는 것이 예의이며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상수가 상좌에 앉는다.
바둑은 실력의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끼리도 서로 대국할 수 있게 핸디캡이 주어진다.

컴퓨터게임보다 재미있는 바둑


바둑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예(藝)이면서 도(道)이다.
상대방과 수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읽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며
수없이 반복되고 중첩되어 나타나는 한판은
흑과 백으로 만들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집을 세우는 정확성, 수를 찾아내는 감각,
형세를 관찰하는 판단력과 같은 기술을 필요로 하면서
대국자의 가치관과 철학이 반영되는 형이상학적 면이 존재한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대한 신뢰와 회의가 한 판에도
몇 백번씩 교차하는 과정은 일종의 참선 과정이고
생의 분출이며 개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바둑은 게임보다 더 정신적이다.
자원을 획득하고 건물을 짓고 병력을 생산하는 게임의 룰과는 달리
바둑은 무(無) 혹은 공(空)에서 시작한다.

경우의 수가 제한되어 있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포커, 고스톱, 체스, 장기, 마작 등은
바둑보다 낮은 차원의 두뇌 활동을 요구하는 반면,
그 오묘함과 난해성은 다른 어떤 게임도 따라가지 못한다.
난해하다는 것은 아직도 그 신비로움이 남아있다는 것이고
컴퓨터가 영원히 정복하지 못할 게임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바둑 즐기기


위기 순간의 결단력, 수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판단력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바둑에 투영되어 있는 우리 인생은 생활이고 전쟁이며
기업 경영과도 같이 치열하고 철학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주위가 산만하고 덤벙대는 아들의 성격을 고쳐보려고 함께 바둑을 배웠다가
오히려 자신이 마니아가 되었다는 김창수씨.

"바둑을 배우면서 아들의 집중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또 아버지와 함께 삼대가 할 수 있는 놀이가 생겨서 즐겁습니다"

아버지와 자녀가 바둑판에서 펼치는 세계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그림으로 재탄생된다.
인터넷 게임 증가로 주춤했던 바둑이 어린이들의 두뇌개발과 판단력,
집중력을 키울 수 있어 다시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보자도 흠뻑 빠져들 만큼 바둑의 재미는 마성과도 같다.
폭력적이고 극히 오락적인 부분만을 강조하여 접속자의 눈을 혼란시키는
컴퓨터 게임에 비해 바둑은 극적인 요소를 갖추면서도 품위가 있다.